

1609년 에도 시대,
일본의 사쓰마번은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남방의 류큐 왕국(현 오키나와)을 공격하여 점령한다
이를 통해 류큐는 일본의 속국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사쓰마번은 류큐의 수도 슈리(나하)에 지배기관을 두는 것도 모자라
해마다 막대한 공물을 요구했고 거부할 경우 탄압하였다
오키나와의 지도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정말 좁은 땅이며
농업이나 무역으로 얻는 수입도 일본 기준에 비하면 낮았기 때문에
류큐 정부는 이런 일방적인 조공 정책을 매우 부담스러워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문제의 유일한 해법은 백성들을 쥐어짜는 것이었다

오키나와 섬 본토는 지배층이 사는 중심지여서 수탈을 비교적 피할 수 있었으나
바다 외곽에 있는 작은 섬들의 경우는 그런 게 전혀 없고 오직 착취 뿐이었다
농민들은 일본과 류큐 지주들에게 바칠 농작물 또는 사치품을 위해 개처럼 일해야 했다
농담이 아니라 조선의 제주도 특산물 착취는 정말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보이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이런 가혹한 세금의 징수 방법은 폐단이 많은 인두세였는데
그걸 피하기 위해 섬의 사람들이 뭘 고안해냈냐면


바로 쓸모없는 사람들의 수를 줄여서 낼 세금을 스스로 줄이는 것이었다
비슷한 것으로 중세 일본 농촌의 영아 살해 악습 '마비키'가 있는데
마비키가 비인륜적이기는 해도 최소 신생아만을 대상으로 한 반면
류큐에서는 그게 모든 연령에게 실시되었으니 어찌 보면 더욱 잔인하다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이런 풍습이 가면 갈수록 섬들 전체에 광범위하게 퍼져서
나중에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없는 섬이 오키나와 본토를 빼면 아예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것의 예시로는 일본 최서단인 요나구니초가 존재한다
인구 2000명의 평화로운 섬이며 고대 유적처럼 보이는 해저 지형이 있어서
현재 많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이곳에는 매우 충격적이다 못해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흔적 또한 남아있다




이 험난해보이는 바위 틈의 이름은 '쿠부라 계곡(久部良バリ)'인데
불과 몇백년 전까지만 해도 요나구니 주민들의 의식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 의식이란 너무 바빠서 직접 인구를 줄일 시간도 없는 농민들에 의해 탄생한 것으로
과정이 매우 잔인한데, 만삭이 찬 마을의 임산부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이 계곡을 맨발로 점프해서 반대편으로 건너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넘어오는 데 성공한 강인한 여인은 아이를 낳을 수 있었지만
나머지는 마을의 세금 감면을 위해 모두 죽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진으로만 봐도 일반인 남성에게조차 버거운 거리인데
굶주려서 몸이 약해질대로 약해진 임산부들이 어찌 건너올 수 있었을까...?
심지어 거의 건너오는데 성공함에도 불구하고 배를 바위에 부딪혀
아기를 유산해버리고 목숨도 잃은 임산부도 있다고 전해진다


이런 지옥과도 같은 지배 때문에 류큐 중앙 정부를 향한 백성들의 증오가 얼마나 심했는지
사람들이 아예 1879년 일본의 류큐 처분으로 나라가 망한 것을 반가워할 정도였다고 한다
류큐 왕국과 오키나와의 잔인했던 역사는 그렇게 끝이 나나 싶지만
본토 일본인들의 차별과 만행 또한 제국주의 시기 내내 여전히 계속되었고
설상가상으로 2차대전까지 발발해버렸기에 평화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패전 이후 오키나와는 미군정이 다스리다 1972년에 다시 일본 땅이 되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일부 일본인들이 일제의 한국 침략과 식민지배를 왜곡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들의 기준으로는 정말로 자비로웠던 것이었기에 그러는 게 아닐까...? 라고